2012년 1월 2일 월요일

예술의 유효성 정당화 하기

이번 학기는 내 스스로가 만족스럽지 못한 학기였다.
예술가로서 드는 회의감과 예술 개념의 증발, 모든것이 예술이 될수 있다는
애매모호 정의로 학생들 스스로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과 대답을
찾게 했지만 내 스스로 길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누군가를 그 길로 인도하기에는
나도 답답했던 노릇 ...

모두다 예술의 종말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이때에 과연 "예술이란 이 시대에 과연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다시 던져본다.

오늘 문득 책장에 꽂혀있던 책중에 알랭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이란 책을 집어들었다
책장에 한 참 동안 꽃혀있었지만 오늘 처음으로 책장을 뒤적이다 정말 우연히도 (아!) 멋진 구절을 발견
예술의 유효성을 정당화 하기엔 그의 예술관이 고전적이긴 하나 그래도 꽤 설득력이 있다.

"오스카 와일드는 휘슬러가 안개를 그리기 전에 런던에는 안개가 없었다는 말을 했다. 마찬가지로 반 고흐가 사이프러스를 그리기 전에 프로방스에는 사잎러스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고 말 할 수도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모퉁이는 예술가들이 그려주거나 글로 써준 뒤에야만 돌아보게 된다는 주장을 완벽하게 확인시켜주는 것 처럼 보인다.

그저 그저 무의미하게 지나가는 삶의 풍경들을 다시 한번 재인식켜주는 것

'많은 예술 작품들은 사실상 우리에게 "프로방스의 하늘을 보라, 밀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라, 올리브 나무를 제대로 평가하라"라고 말해주는 아주 섬세한 도구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훌륭한 예술 작품이라면 밀밭에 있는 수백만가지 요소 가운데서도 관객의 미감과 관심을 자극할 수 있는 중요한 특징을 그려낼 것이다. 이런 작품은 보통 대량의 정보속에 파뭉혀 사라져버리는 요소들을 전경에 내세워 그것을 도드라지게 만든다. 그리고 일단 그것이 눈에 익으면,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것에 자극을 받아 우리 주위의 세계에도 그것을 발견하려 들게 된다. 이미 발견했다면, 자신감을 가지고 우리 삶에서 그것들에 무게를 실어주게 된다.'

삶의 고통과 아름다움을 재인식켜 주는 것...

내가 계속 이길을 가기위해서는 정말 정당성을 계속 찾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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