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31일 화요일

눈오는 밤

고 통을 순수하게 살게하는 것이 신비한 행복의 마술이라니! 그 무슨 소린가. 고통의 부정적 성격을 제거시켜 보지 못한 사람은, 고통을 고통의 안과 밖에서 같이 바라다보지 못한 사람은, 순수한 고통이 신비한 행복의 마술에 의해 그 고통을 앓는 사람을 오히려 위로한다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리라. 고통의 부정적 성격을 승화시킬 때, 고통은 심리적 원형이 되어 그 고통과 유사한 고통을 느낀 사람들의 고통에 참여하여, 인류적인 고통, 우주적인 고통이 되는 법이다. 다른 사람의 고통에 합일된 고통, 우주의 고통과 합일된 고통이면 그 고통은 숨쉬는 자를 얼마나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것인지!
 -김현-
친구가 힘내라고 보내준 영상을또 내친구에게 보내주고
보내준 친구와 받은 친구는 영상을 보고 울었다는, 그들은 나보다 더 힘든가 보다...아...
누구나 자신만이 감당해야할 삶의 고통의 무게들이 있지만, 저 말처럼 그 고통은 심리적 원형이 되어 그 고통과 유사한 고통을 느낀 사람들의 고통에 참여하여 서로를 위로할수 있게 되나보다 
아 ... 눈오는 밤... 행복한 밤... 당신들이 나와 함께있어서  

2012년 1월 30일 월요일

월든 p612

나는 내 자신을 탐험한 적이 있던가?



" 정신의 세계에는 수많은 대륙과 바다가 있으며, 모든 사람들이 거기에 지협과 만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자기 자신은 탐험한 적이 없다는 사실은,

정부에서 만든 배를 타고 500명이나 되는 사내와 소년들에게 한 명의 인간을 돕도록 하여 한기와 폭풍우와 식인종과 만나게 될지도 모를 위험을 무릅쓰고 수천 마일이나 항해를 하는 편이

홀로 개인의 바다,
즉 자신이라는 존재의 대서양과 태평양을 탐험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인정한 것일뿐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너 자신을 탐험해야' 한다


나는 진정으로 내 자신을 탐험했던 적이 있던가?

'자신을 탐험'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스티브잡스의 전기에서 잡스가 자신을 찾기위해 인도로 떠났다거나, 쏘로우가 사회를 벗어나 호수가에 집을 짓고 몇년동안 살았던 그런 종류의 것일까? 


2012년 1월 29일 일요일

내 방 문 포스터






Poster, produced as a contribution to Graphic, no.20, 2011, 600 x 900 mm.,  슬기와 민






2012년 1월 28일 토요일

think different

Here’s to the crazy ones. The misfits. The rebels. The troublemakers.
The round pegs in the square holes. The ones who see things differently.
They’re not fond of rules. And they have no respect for the status quo.
You can quote them, disagree with them, glorify or vilify them.
About the only thing you can’t do is ignore them. Because they change things.
They push the human race forward.
While some may see them as the crazy ones, we see genius.
Because the people who are crazy enough to think they can change the world, are the ones who do. - Apple Inc.




여기 미친 이들이 있습니다. 부적응자, 혁명가, 문제아 모두 사회에 부적격인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사물을 다르게 봅니다. 그들은 규칙을 좋아하지 않고 현상 유지도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을 찬양할 수도 있고, 그들과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그들을 찬미할 수도, 비방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없는 일이 가지 있습니다. 결고 무시할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뭔가를 바꿔왔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인류를 진보시켰습니다.
 다른 이들은 그들을 미쳤다고 말할지 모르나, 저희는 그들에게서 천재성을 봅니다.
 
미쳐야만 세상을 바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12년 1월 26일 목요일

2012년 1월 25일 수요일

전공이

Art & technology
인데 왜 wii 같은데는 도통 관심이 없는걸까 

2012년 1월 23일 월요일

월든

60평대 아파트로 이사간다는 동생네에게 오늘 엘르 인테리어지를 건내준 내 오른손은

그들이 간뒤 다시 월든을 집어들었다.

얼마나 아이러닉한 상황인지 알지만 전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욕구하는 삶의 방식이며

후자는 그러한 삶에서 조금이라도 자유롭고 싶은 나의 발버둥이다.

쏘로우를 동경하며 그의 월든의 삶을 모방하여 살았던 대학때 철학 강사분이 다시 떠오른다. 가슴깊이 그의 아나키스트적인 삶과 생각들에 감동을 받고 쏘로우의 책을 읽었던
기억이 있지만  어느새 나도 서울의 너무나도 소비적 삶에 동화되어 휘청거리다가 요즘

다시 읽게 된 책 월든은 조금은 방향을 잃은내 삶에 좋은 지표가 될듯 하다


가장 씁쓸한 것은 자기 자신을 노예로 삼고 있는 노예감독들이 있다는 사실이라는, 매우 무기력하고 병적인 사회에서는 생활 필수품이라고 여겨지고 있는 것들이 다른 사회에서는 단순한 사치품에 지나지 않은 것이 되며,또 다른 사회에는 아직그 존재조차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이라는

아담과 하와가 벌거벗은 채로 나무 그늘 아래 살았던 시대에 비하면 , 지금은 너무나도 갖춰져야 할 것들 많다. 문명과 유행이라는 것이 그러한 단순한 삶에 비해서 우리 삶에 더 가져다 준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오히려 속박이며, 노예적인 삶이라는 것을


나도 그러한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이책을 먹고 싶다









2012년 1월 22일 일요일

2012년 1월 17일 화요일

Odagiri

research

작업을 위한 레이아웃 리써취중 집근처에 NHN 라이브러리가 있어서 행복 반트와플과 아메리카노 한잔도 행복

2012년 1월 16일 월요일

2012년 1월 15일 일요일

2012년 1월 14일 토요일

밀레니엄



멋찐 오프닝 크레딧과 여주인공 루니마라
아직도 세게에 존재하는 여성에 대한 폭력과 가족, 그리고 왕 싸이코들 이야기

2012년 1월 13일 금요일

링크

접속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 시대에 왠지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을때가 있다.
정 말 모든 세계가 다 연 결 된듯 하다. 숨을 곳이 없는...

쥐스킨트나 하루키같은 은둔자적이고 노매드적인 예술가의 모습은 존재하지 않는 걸까
난 그들을 동경했었다. 피아노 앞의 피아니스트들처럼 철저히 자기 훈련에 몰두하는 예술가

하지만 현대는 링크되어야 하고, 접속되어야 하며, 네트워킹되어야 하는 시대가 왔나
가끔 이러한 장소들이 '광장'처럼 너무 시끄러울때가 있다.
나도 이공간이 외부로의 확장된 공간, 네트워크 안의 블로그가 아닌, 내 안으로 확장시키고 싶은 열망에서 만든 공간이며 그리고 언젠가 나의 기록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한 일종의 자서전적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아뭏든 입닥치고 작업!

2012년 1월 12일 목요일

2012년 1월 10일 화요일

레비나스

'타자'라는 말이 빈번하게 쓰이고 있는 지금, 이 단어가 레비나스로부터 시작되었음
서동욱 교수가 레비나스의 서적에 대한 칼럼을 쓴것중 일부이다

"먼저 물어야 할 것이 있다. ‘진정한 삶’이 부재하는 세계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사는가? 우리는 우리와 다른 대상을 먹거나, 우리에게 필요한 물건으로 바꾸거나, 또는 우리의 인식의 대상으로서 소유한다. 욕구(besoin)하는 대상을 흡수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나에게 종속된 것으로 만든다. 한 마디로 나는 마이다스 왕처럼 온갖 타자를 자기 소유의 황금으로 바꾸면서 내가 주인인 세계를 구성한다. 자기보존욕을 타고난 존재자 일반은 자기 욕구를 충족시키게끔 되어있다. 요컨대 “존재자가 자기 자신에게 전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레비나스는 내가 세계의 주인으로써, 나의 욕구에 따라 세계를 즐기고 관리하는 이러한 존재 양식, 혹은 나 자신에게 몰두하여 끊임없이 나의 세계로 귀환하는 사유를 일컬어 ‘존재론’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나의 존재에 전념하는 “이 시간은 슬픔을 달래고 죽음을 극복하기엔 충분치 않다.” 그것은 노동을 하고 먹거리를 벌어 나를 먹이는 일이 반복될 뿐 아무런 질적 도약이 없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노동과 향유를 통해 세계 안의 모든 것을 자기의 소유물로 만든 이 고독한 부자에게 찾아올 새로운 손님이란 죽음 밖에 없는 것이다. 죽음이 도착할 때까지 노동과 향유라는 천편일률적인 순간들이 반복되리라."
"이렇게 신은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타자와의 관계라는 맥락 속에서만 의미 있는 것이 된다. 그러니 교회가 아니라, 이기적인 바람을 담은 기도 속에서가 아니라, 먼저 고통 받는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신은 도래한다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타자와의 관계가 ‘신’이라는 말이 비로소 의미를 지니게 되는 맥락이라면, ‘존재자’로서의 신을 믿지 않고도 우리는 신이란 말을 유의미하게 사용할 수 있지 않은가? 레비나스의 초월 또는 형이상학이란 바로, 타자의 얼굴을 자신의 흔적 삼아 나타나는 무한자와 관계함을 말한다. 이 관계란, 내가 나에게 전념하는 세계를 떠나, 나와 전혀 다른 자에게로 가서 그를 위해 나를 종처럼 건네주는 일이다. "

꽤나 현대적이지 못한 이러한 생각들이 지금 동시대에 유효할지 모르겠지만,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삶이 아닌, 좀더 타인을 향해 있는 삶이 더 나은 삶이라는

너무나 이기적인 나로서는 아직 너무나도 먼길인듯

가자

2012년 1월 9일 월요일

요 며칠 산 책

미셀 투르니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

박해천의 '콘크리트 유토피아'

다닐 알렉산드로비치 그라닌의 '류비셰프'

다시한번 소로우의 하드커버'월든'(이건 소장용)

그리고 몇권의 잡지

jacket

그랬겠지...

사람들은 자기가 남들에게 준 상처에 대해서는 무디고
남이 자신에게 준 상처에는 곱씹으며 깊이 잊지 못한다.

그대들이 내게 준 상처들은 마음 켠켠히 쌓아두고 묻어두지만
내가 그대들에게 준 상처는 내가 인식하지 못한 경우도 더러 있는 것 같다.

내가 받은 상처의 크기만큼이나
내가 준 상처도 그만큼 컷겠지
그랬겠지......

2012년 1월 7일 토요일

saatchi online collage collection - voting

http://www.saatchionline.com/showdown/view/showdown/9

마이 웨이

영화를 구별할 때 재미있는 영화와 재미없는 영화로 구분한다면 이 영화는 후자 쪽이다.
하지만 재미가 없다고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이 영화를 예술영화로 치부하고 싶은 것은 재미는 없지만 많은 질문들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국가나 이념, 시스템같은 보이지 않는 거대한 것과 개인 사이의 갈등,
어떤 한 인간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결국 nationlaity나 ideology가 아니지만
결국 거기서 벗어나기는 힘들다는 것

한 개인의 역사라는 것이 결국 세계사에 종속될 수 밖에 없는 것인가 하는 물음에
푸코적으로 정체성은 권력과 개인간의 타협과 상호 작용 속에서 형성된다는 것을
두 인물을 통해 보여주는 듯 하다.

아, 돈도 많이 들었겠지만 찍느라 고생좀 했겠다... 자신의 신념과 진실을 이야기 하고자
이리도 재미없고 힘든 과정을 견뎌낸,

그리고 오다기리 조, 일본에서 욕좀 먹었겠다

2012년 1월 5일 목요일

2012년 1월 3일 화요일

일냈다 - -
아 ... 언제나 이상이 먼저 앞서고, 그 다음은 현실이다
이 조급증

2012년 1월 2일 월요일

vanitas versace

neo vanitas





vanitas



예술의 유효성 정당화 하기

이번 학기는 내 스스로가 만족스럽지 못한 학기였다.
예술가로서 드는 회의감과 예술 개념의 증발, 모든것이 예술이 될수 있다는
애매모호 정의로 학생들 스스로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과 대답을
찾게 했지만 내 스스로 길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누군가를 그 길로 인도하기에는
나도 답답했던 노릇 ...

모두다 예술의 종말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이때에 과연 "예술이란 이 시대에 과연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다시 던져본다.

오늘 문득 책장에 꽂혀있던 책중에 알랭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이란 책을 집어들었다
책장에 한 참 동안 꽃혀있었지만 오늘 처음으로 책장을 뒤적이다 정말 우연히도 (아!) 멋진 구절을 발견
예술의 유효성을 정당화 하기엔 그의 예술관이 고전적이긴 하나 그래도 꽤 설득력이 있다.

"오스카 와일드는 휘슬러가 안개를 그리기 전에 런던에는 안개가 없었다는 말을 했다. 마찬가지로 반 고흐가 사이프러스를 그리기 전에 프로방스에는 사잎러스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고 말 할 수도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모퉁이는 예술가들이 그려주거나 글로 써준 뒤에야만 돌아보게 된다는 주장을 완벽하게 확인시켜주는 것 처럼 보인다.

그저 그저 무의미하게 지나가는 삶의 풍경들을 다시 한번 재인식켜주는 것

'많은 예술 작품들은 사실상 우리에게 "프로방스의 하늘을 보라, 밀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라, 올리브 나무를 제대로 평가하라"라고 말해주는 아주 섬세한 도구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훌륭한 예술 작품이라면 밀밭에 있는 수백만가지 요소 가운데서도 관객의 미감과 관심을 자극할 수 있는 중요한 특징을 그려낼 것이다. 이런 작품은 보통 대량의 정보속에 파뭉혀 사라져버리는 요소들을 전경에 내세워 그것을 도드라지게 만든다. 그리고 일단 그것이 눈에 익으면,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것에 자극을 받아 우리 주위의 세계에도 그것을 발견하려 들게 된다. 이미 발견했다면, 자신감을 가지고 우리 삶에서 그것들에 무게를 실어주게 된다.'

삶의 고통과 아름다움을 재인식켜 주는 것...

내가 계속 이길을 가기위해서는 정말 정당성을 계속 찾아야 할 것 같다.

2012년 1월 1일 일요일

2012년 1월 1일

'챈들러 방식'의 글쓰기
먼저 데스크를 하나 정한다. 그리고 거기에 원고용지나 만년필이나 자료등을 잘 갖춰둔다.
그리고 매일 일정한 시간을 - 가령 두 시간 동안 - 그 데스크 앞에 앉아 있으라는 것이다.
잘 써지든, 잘 써지지 않던

나도 이번해에는 '챈들러 방식'의 작업하기 방법을 써봐야 겠다.
작품이 잘 되던, 안되던 간에 데스크 앞에 앉아 있기